
* ‘디자이너 리서치 노트’는 Q.E.D. 디자인의 근거가 되는 조형적·문화적 연구를 공개하는 시리즈 칼럼입니다.
Chytra, 키트라는 고대 그리스에서 조리용 토기(cooking pot)를 뜻하는 단어다. 그리스 조리용 토기의 외형적 특징은 편구형의 본체(body), 다소 좁아지는 개구부(mouth), 짧게 확장된 테두리(rim), 강조되지 않은 목(neck), 그리고 테두리에서 본체 상단(shoulder)으로 접속하는 0~2개의 손잡이 혹은 돌기(tab)로 요약된다.
이러한 구성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는 전형적인 cooking pot 계열의 형식으로, 열의 보존(둥근 본체·좁은 개구부)과 조작성(테두리·손잡이·돌기)에 의해 규정되는 기능적 형태이다. 따라서 학술적 기준에서는 별도의 기형(typology)으로 분리되지는 않지만, 키트라는 아르카익기 이후 고전기에 들어서 비교적 안정된 비례와 조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기능군적 의미의 조리용 토기와는 다소 구별되는 준형식(quasi-form)을 이루는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단순한 기능 토기이며 그 용도 또한 물의 가열이나 죽·수프의 조리에 한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키트라의 형태가 비교적 안정된 형식으로 정립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찍부터 형태(μορφή)와 형상(είδος)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사유는 실용성과는 별도로 사물이 취하는 형식 자체를 가치의 층위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일상용 토기에서도 비례, 안정성, 조화와 같은 조형적 기준이 고려되었다.
둘째, 폴리스의 성장과 함께 도시적 생활양식이 정착하면서 토기 생산이 일종의 산업화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공방(workshop) 체계가 고도로 전문화되었고, 대량생산의 과정에서 형태가 표준화·고정화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사진: British museum
그리스인에게 키트라는 풍요와 안정을 상징하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생활도구였다. 아테네의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 축제의 제3일이 Chytroi(키트로이) 라고 불렸으며 그 내용이 죽을 끓여 사자死者에게 바치는 의례인 점에서 식문화와 제의가 긴밀하였던 그리스인들에게 키트라가 특정 맥락에서는 제의적 성격을 띠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문화가 로마 제국기에 편입되면서 키트라는 준형식(quasi-form)으로서의 안정성을 상실하고 기능군적 조리용 토기의 성격으로 회귀한다. 이 과정에서 죽·곡물 조리에 한정되었던 용도가 보다 범용적인 조리기능으로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평저화(flat base)와 통구화(globularization) 등 형태적 변화가 나타났다. 최종적으로 키트라는 로마의 올라(Olla)로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chytra 혹은 chytrai는 본래 그리스 문헌에서 ‘냄비·조리용 항아리’를 뜻하는 일상 용어였으며, 고고학적 분류에서 특정한 ‘기형’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는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키트라는 엄밀한 기준에서 cooking pot 기능군에 속하는 용기로, 그 범주 안에서 지역·시대별 다양한 형태적 변이와 다소간의 형식화를 보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학술적으로 타당하다.
리서치 및 텍스트 : 이세미, © Q.E.D.
작성일: 2025-12-03
참고 자료:
- Michael Vickers & David Gill, Artful Crafts: Ancient Greek Silverware and Pottery. Oxford University Press.
- J.-P. Morel, Céramique Campanienne.
- Roberta Vargiolu, “Roman Coarse Ware and Olla Typologies.”
* ‘디자이너 리서치 노트’는 Q.E.D. 디자인의 근거가 되는 조형적·문화적 연구를 공개하는 시리즈 칼럼입니다.
#1: 키트라
Chytra, 키트라는 고대 그리스에서 조리용 토기(cooking pot)를 뜻하는 단어다. 그리스 조리용 토기의 외형적 특징은 편구형의 본체(body), 다소 좁아지는 개구부(mouth), 짧게 확장된 테두리(rim), 강조되지 않은 목(neck), 그리고 테두리에서 본체 상단(shoulder)으로 접속하는 0~2개의 손잡이 혹은 돌기(tab)로 요약된다.
사진: British museum
이러한 구성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는 전형적인 cooking pot 계열의 형식으로, 열의 보존(둥근 본체·좁은 개구부)과 조작성(테두리·손잡이·돌기)에 의해 규정되는 기능적 형태이다. 따라서 학술적 기준에서는 별도의 기형(typology)으로 분리되지는 않지만, 키트라는 아르카익기 이후 고전기에 들어서 비교적 안정된 비례와 조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기능군적 의미의 조리용 토기와는 다소 구별되는 준형식(quasi-form)을 이루는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단순한 기능 토기이며 그 용도 또한 물의 가열이나 죽·수프의 조리에 한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키트라의 형태가 비교적 안정된 형식으로 정립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찍부터 형태(μορφή)와 형상(είδος)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사유는 실용성과는 별도로 사물이 취하는 형식 자체를 가치의 층위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일상용 토기에서도 비례, 안정성, 조화와 같은 조형적 기준이 고려되었다.
둘째, 폴리스의 성장과 함께 도시적 생활양식이 정착하면서 토기 생산이 일종의 산업화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공방(workshop) 체계가 고도로 전문화되었고, 대량생산의 과정에서 형태가 표준화·고정화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사진: British museum
그리스인에게 키트라는 풍요와 안정을 상징하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생활도구였다. 아테네의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 축제의 제3일이 Chytroi(키트로이) 라고 불렸으며 그 내용이 죽을 끓여 사자死者에게 바치는 의례인 점에서 식문화와 제의가 긴밀하였던 그리스인들에게 키트라가 특정 맥락에서는 제의적 성격을 띠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문화가 로마 제국기에 편입되면서 키트라는 준형식(quasi-form)으로서의 안정성을 상실하고 기능군적 조리용 토기의 성격으로 회귀한다. 이 과정에서 죽·곡물 조리에 한정되었던 용도가 보다 범용적인 조리기능으로 확장되었고, 이에 따라 평저화(flat base)와 통구화(globularization) 등 형태적 변화가 나타났다. 최종적으로 키트라는 로마의 올라(Olla)로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chytra 혹은 chytrai는 본래 그리스 문헌에서 ‘냄비·조리용 항아리’를 뜻하는 일상 용어였으며, 고고학적 분류에서 특정한 ‘기형’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는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키트라는 엄밀한 기준에서 cooking pot 기능군에 속하는 용기로, 그 범주 안에서 지역·시대별 다양한 형태적 변이와 다소간의 형식화를 보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학술적으로 타당하다.
리서치 및 텍스트 : 이세미, © Q.E.D.
작성일: 2025-12-03
참고 자료:
- Michael Vickers & David Gill, Artful Crafts: Ancient Greek Silverware and Pottery. Oxford University Press.
- J.-P. Morel, Céramique Campanienne.
- Roberta Vargiolu, “Roman Coarse Ware and Olla Typologies.”